요즈음 서울조선족교회는 매일 동포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한국국적 회복운동에 참가하려는 조선족동포들 때문이다. 11월4일 현재 신청자의 숫자는 5천명이 넘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신청하는 동포의 대부분은 한국에 온지 4년이 넘어 중국으로 돌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돌아갈 처지가 못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훨씬 더 근본적이다.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돌려달라는 것이다.
이들 조선족동포들은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위해 혹은 도저히 한반도에서 살 수 없어 만주로 떠난 사람들의 후손이다. 해방 후 해외로 나간 사람들이 전부 귀국했지만 유독 만주로 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北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면서 귀국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1992년 한중수교이후 동포들은 이제야 귀국하게 되나보다 하고 크게 기대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이들의 귀환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들은 1948년 제정된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에 의해 전부 한국국민이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한국국민임을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다. 더구나 일제치하에서는 상해 임시정부에 세금까지 냈다. 대한민국 정부가 상해임정의 법통을 이어 받았다면 당연히 이들 상해임시정부의 국민들을 한국국민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지만 한국정부는 이들에게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지금도 절규한다. '이 땅에 내 할아버지 묘지가 있고, 내 호적도 있고, 사촌들도 여기 살고 있는데 내 나라 내 땅에서 왜 내가 불법체류자로 살아야 하고 또 추방당해야 하는가?'하고.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도 이 절규 앞에서 떳떳하게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찾기 : 한국이 사는 길
92년 한중수교 직후에는 우리가 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 당시 상황에서 조선족동포를 전부 받아들이면 실업난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안보상의 문제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를테면 우리나라는 3D업종에서 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한국인은 아무리 청년실업율이 높아도 힘든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외국인노동자가 없으면 중소기업이 空洞化되어 국민경제가 심각하게 위협 당한다. 그렇다면 외국인노동자보다 우리 동포를 들여와서 일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구나 한국은 인구증가율 저하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대로 가면 머지 않아 인구가 감소한다. 고령화사회를 뒷받침해야 하는데 노동인구가 절대적으로 모자라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외국 노동력이 올 수밖에 없는데 같은 핏줄인 조선족이 들어오는 것이 사회적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또한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을 위해서도 조선족동포가 필요하다. 이미 중국에 가서 살고 있는 한국인 수가 30만 명이 되었다. 이 숫자는 앞으로도 백만 명으로까지 늘어날 것이다. 앞으로 한국경제가 살길은 중국으로 진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경제는 중화경제권에 편입되었고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의 일등공신이 바로 조선족이다. 일본기업이 한국기업을 부러워하는 이유가 자기들은 조선족처럼 기업진출을 위해 도움 받을 사람이 없다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기업과 조선족 사이의 불신이 심각한 점이다. 그래서 조선족이 한국국적을 취득한 후에 일정한 훈련을 받은 후 다시 한국기업의 일원으로 중국에 재진출하면 신뢰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어 한국기업에 막대한 도움이 된다.
그런데 동포들에게 전부 국적을 주겠다고 해도 실제로 국적을 취득할 사람은 전체 조선족의 삼분의 일을 넘지 않는다. 이미 중국에서 잘살고 있는 동포들은 구태여 한국국적을 취득할 이유가 없다. 한국국적을 취득하면 중국국적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토지 사용권 등 중국에서의 모든 기득권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한국국적을 취득해서 3D업종에서 일하다가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나이가 되면 대개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다. 중국이 물가가 훨씬 싸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은퇴한 한국인까지도 중국에서 여생을 지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또 조선족동포들은 한국에서 어느 정도 돈을 모으면 대부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다. 물정을 모르는 한국에서 단순노동을 하는 것보다는 경제적 기회가 더 많은 중국에 돌아가 크게 활동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동포들에게 국적을 주어도 대량입국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 만일 입국자가 몰리게 되면 적절하게 속도조절을 하면 된다. 이를테면 성년이 되어야 국적취득이 가능하도록 하고, 매년 국적취득이 가능한 인원수를 한정하고, 한국이 필요로 하는 인력에게 우선적으로 국적을 주고, 과도기 조처로 먼저 영주권을 획득한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국적을 주는 방법을 택할 수 있다.
<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 : 중국 조선족사회가 사는 길
그런데 중국 조선족사회의 입장에서도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 운동은 대단히 유익하다. 일견 보기에는 이 운동이 조선족사회를 약화시키고 무너뜨리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즉 이제까지 조선족은 중국혁명에도 크게 기여하고 56개 소수민족 중에서 가장 대우받는 민족이었지만 이 운동을 하면 조선족이 조국을 배반하는 민족으로 낙인찍혀 중국내의 지위가 약화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5-60만 명이 한국국적을 취득하게 되면 그동안 열심히 일구어 놓은 조선족 동포사회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조선족의 지위가 오히려 더 강화된다. 중국에서 조선족동포들이 다른 선택의 길이 없으면 중국인으로부터 무시당한다. 그런데 한국국적을 취득할 길이 있으면 그때에는 중국정부가 오히려 조선족을 회유하려고 할 것이다. 지금 중국이 외국인투자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동포들도 더욱 당당해진다. 한족이 조선족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하면 나는 한국국적을 취득하겠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도망갈 길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굽실거리는 삶을 살지 않는다.
또 조선족 동포사회가 무너질 것이라는 염려도 맞지 않는다. 조선족동포사회의 존속여부는 우리말의 유지여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조선족동포사회를 튼튼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민족의식이 투철한 조선족지도자의 영도하에 농촌에서 쌀농사를 지으며 함께 살면서 우리말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같은 이유로 고향을 떠나 연해주에 정착했던 고려인은 우리말을 잃고 말았다. 1938년 10월 어느 날 새벽 스탈린은 고려인 사회의 지도자 3천명을 불러모아 전부 총살시켰다. 그리고는 고려인을 전부 시베리아 열차를 타게 하여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켰다. 15만명의 동포가 강제이주를 당했는데 이 과정에서 1만5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민족의 해외이주史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중앙아시아에 떨어진 우리동포들은 땅굴을 파고 목숨을 부지했고 기어코 그 곳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은 우리말을 잃어버렸다. 민족의 지도자들이 전부 죽고 민초들만 살아남아 생명을 부지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려인들은 조선족처럼 한국에 몰려올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선족은 고려인과 다른 길을 걸었다. 조선족사회는 민족의식이 투철한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마을마다 조선족학교를 세웠고 우리말을 철저하게 유지했다. 그런데 쌀값이 하락하면서 쌀농사로는 살 수 없게 되었다. 과거 60년대에 한국에 불었던 이농바람이 중국에도 불어닥친 것이다. 그러나 동포들은 도시로 나가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중국말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일한 길은 한국가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돈을 천만원씩 쓰면서 한국으로 오게 된다. 이른바 코리안 드림의 열풍이다. 조선족동포들이 투철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우리말을 철저하게 유지한 죄(?)로 지금 이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족 마을이 붕괴되면서 조선족학교의 80%가 문을 닫아 조선족 어린이들이 급속도로 우리말을 잃게 되었다. 게다가 동포들이 한국에서 차별과 천대를 받고 추방까지 당한 후에는 '우리는 중국사람으로 살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절감하게 되고 중국에서 잘살기 위해서는 자기 아이들이 중국말을 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한족학교로 옮기게 된다. 요즈음 동포들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을 찾아 천진, 청도, 위해, 상해 등지로 옮겨가고 있다. 그래서 그 도시에 새로운 조선족 거주지가 생겨나고 있지만 그곳에 조선족학교는 생기지 않는다. 조선족이 자기 자식을 다 한족학교에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포들이 우리말을 잃어버리고 나면 그들은 더 이상 우리동포가 아니게 된다. 미국이나 러시아에 간 동포들은 언어를 잃어버려도 동포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 피부색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차별 때문에 동포사회가 유지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조선족에 대한 차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우리말을 잃어버리면 곧바로 한족사회에 섞여 한족으로 살게 된다. 미국으로 이주한 조선족동포의 사례가 이점를 잘 설명한다. 조선족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미국에 가서 코리아타운을 찾아가지만 한족학교를 나온 사람은 차이나타운을 찾아간다. 언어가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포가 우리말을 잃으면 그것이 바로 조선족 사회의 소멸을 의미하게 된다.
동포사회가 소멸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우리말을 잃어버리는 현상 외에도 두 가지 현상이 더 있어서 서로 중첩되기 때문이다. 하나는 조선족 출생률의 저하가 심각한 점이다. 지난 십 년 간 조선족 아이의 출생률이 사 분의 일로 줄었다. 국제결혼하여 한국으로 간 여성의 숫자가 크게 늘고 도시로 가서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조선족여성의 숫자가 늘어 임신가능한 여성이 그동안 사분의 일로 줄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중국정부가 '조선족의 漢族化'정책을 확고하게 밀고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유독 연변자치주에서만 祖國觀, 歷史觀, 民族觀 교육을 하고 있다. 즉 중국이 조선족의 조국이고, 중국역사가 조선족의 역사이고, 조선족민족은 중국민족이라는 것이다. 만주족, 여진족, 말갈족, 몽고족, 티벳족 등 수많은 주변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으로 同化시켜 온 중국의 同化의 역사가 지금도 진행중인 것이다. 이 때문에 동포들이 민족적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대로 가면 조선족의 미래는 길어야 20 년을 넘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 '조선족의 漢族化' 흐름을 돌려놓을 것인가? 우리 생각은 '동포들이 원하면 한국국적을 주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선족은 자기 자식에게 악착같이 우리말을 가르친다. 자식이 成年이 되어 한국국적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족 60만명이 한국으로 와도 이들이 전부 한국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면 이들은 대부분 중국으로 돌아간다. 중국이 물가가 싸기 때문이다. 또 젊은 동포들은 대부분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기업에 취직해서 다시 중국의 현지법인으로 나가게 된다. 요즈음 한국에서 조선족동포를 채용하고 싶어하는 중국진출 한국기업이 늘고 있다. 중국에서 조선족을 채용하면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동포들을 채용해서 몇 년간 훈련을 시킨 후에 중국으로 파견시키고 싶어하는 것이다. 한국기업은 믿을 수 있는 동포를 원하기 때문이다.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중국에서 살 한국인의 수는 백만 명까지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들 한국인은 조선족과 함께 어우러져 코리아타운을 만들어갈 것이다. 앞으로의 조선족동포사회는 이런 방식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한국국적을 주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된다.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 운동 : 중국정부가 반대하는가?
조선족의 국적회복운동을 중국정부가 반대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물론 중국정부가 이 운동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이 운동을 공개적으로 반대할 명분이 없다. 중국정부 자신이 재외동포들에게 중국국적을 주어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선족 본인이 스스로 한국에 국적회복신청을 하는 것을 받아주었다고 해서 중국정부가 반대할 명분은 전혀 없다. 이미 한국정부가 이민一世 중국교포의 국적을 회복해 왔지만 중국이 이를 반대한 바가 없다.
혹시나 중국정부가 국적회복운동을 공개적으로 반대한다면 우리는 할말이 많다. 그렇다면 중국정부는 연변자치주에서 실시하고 있는 역사관, 민족관, 조국관이라는 이른바 3觀교육을 중단해야 한다. 그래서 조선족들이 자신의 민족적 주체성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동포들이 중국에서 즐겁게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조선족은행도 설립할 수 있게 허락해야 한다. 조선족이 경제적 힘과 민족적 주체성도 갖고 살 수 있다면, 그래서 동포사회에 다시금 희망이 보인다면 우리는 구태여 국적회복운동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금 너무 많은 동포들이 국적 신청을 하고 있다. 왜 그런가? 한국에 좀더 있고 싶어서 하나의 방편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 조선족 동포사회에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정부가 이 운동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해서 우리가 이 운동을 중단할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 2백만 조선족을 중간에 놓고 중국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는 조선족 2백만이 완전히 중국사람化하는 것을 결코 그대로 방관할 수 없다. 이 2백만은 우리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우리민족의 중요한 인적자원이다. 이들이 한국어와 중국어를 둘 다 사용할 줄 아는 인구로 남는 것이 우리민족의 장래를 위해 너무도 필요하다. 나아가 우리는 중국정부를 설득해서 조선족이 한국어와 중국어를 다함께 하는 민족이 되는 것이 중국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납득시켜야 한다. 중국정부도 우리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하고 나면 우리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한국이 2백만 조선족의 도움을 받아 중국에 적극 진출하는 것이 중국에게도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중국정부가 국적회복운동에 대해 오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점이 있다. 이 운동은 중국을 등지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에 서울조선족교회가 중국국적 포기운동을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홍보차원에서의 기획에 불과했다. 국적신청운동을 하면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지만 국적포기운동을 하면 언론의 관심이 비상해진다. 예상했던 대로 언론이 동포들의 문제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국적 포기운동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혹시나 중국정부가 오해할까 보아서였다. 또 조선족 지식층에서도 안 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고가 있었다. 또 국적회복운동조차도 중국을 등지는 운동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견해가 있었다. 그래서 이런 오해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이 운동의 명칭을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 운동을 바꾸기로 하였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중국을 등지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 아는 동포지도자로 심양에 사시는 박경옥 할아버지가 있다. 그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고 지금은 아들이 사업을 크게 해서 부유하게 살고 계신다. 그분이 나를 만날 때마다 강조한 점이 바로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였다. 그 할아버지는 중국이 좋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 살고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분은 왜 <고향에 돌아가 살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가고 항변하셨다. '나는 내가 선택해서 중국에 있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 동포들이 국적회복운동을 하는 것은 진짜로 국적회복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박경옥 할아버지처럼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다. 이 권리가 회복된 후에 그 때 가서 동포들은 각자 자유롭게 국적을 선택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정부는 이들 6천명이 '배은망덕하게 중국을 등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조선족동포의 문제를 국적법으로 해결하지 말고 재외동포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재외동포법에 대해서는 중국정부가 강하게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국회의원 몇분이 재외동포법과 관련해서 중국방문을 하려 했는데 중국정부가 아예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이유는 내정간섭이라는 것이다. 왜 중국국민을 이래라저래라 하는가? 왜 조선족과 한족을 차별하려 하는가였다. 그러면 중국정부는 자기들의 재외동포를 특별대우 안하는가? 아니 특별대우 한다. 다만 중국에는 재외동포법과 같은 법이 없고 대신 여러 가지 행정조처로 자기 동포들을 우대한다. 그러니까 중국정부는 한국이 재외동포법으로 조선족동포를 우대하려는 것을 극력 반대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한국정부과 국회는 중국정부의 신경을 거스르는 입법은 전혀 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정부와의 현안이 많은데 동포들의 문제로 중국정부와 등질 수 없기 때문이다.
꼭 중국정부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재외동포법을 개정해서 조선족 동포들이 마음대로 직장을 갖고 마음대로 왕래하도록 하는 것은 지금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국내체류 외국인노동자 중 4년 이상 된 사람은 이번에 전부 나가야 하는데 조선족동포는 예외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지금의 외국인노동자제도의 틀을 허무는 것이 되어 정부가 하기 어렵다.
재외동포법으로 동포들을 돕는 것도 불가능한데 국적회복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사실이다. 그러나 어차피 시간이 걸릴 일이면 정공법으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구체적인 해결방법은 재외동포법으로 풀든 국적법으로 풀든 정부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다.
왜 국적회복신청을 하고 헌법소원을 내는가? 그리고 왜 단식농성을 하는가?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 운동을 위해 국적회복 신청을 한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6천명이 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전부 법무부를 찾아가서 국적회복신청을 하게 된다. 그러면 법무부는 동포들에게 접수거부확인서를 떼어줄 것이다. 불법체류자여서 신청을 못받아 주겠다는 것이다. 이유치고는 너무도 졸렬한 이유이지만 규정이 그렇다니 어쩌랴! 우리는 이 접수거부확인서를 가지고 행정소송을 낼 예정이다. 불법체류라고 신청을 받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문제를 다투느라 시간을 끌 수 없기 때문에 동포들은 다음날 헌법소원을 내러 헌법재판소를 갈 예정이다. 근본적으로 이들은 1948년 5월 11일에 공표된 <국적에 관한 임시조례>와 1948년 제헌헌법 부칙 10조에 의해 대한민국 국민이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자손들도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이들은 그 후 대한민국 국민임을 포기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꼼짝없이 중국국민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포기했는지를 물어봐야 한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들을 한국국민이 아닌 것으로 간주했다. 우리는 이점이 위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내는 것이다.
헌법소원을 제출한 다음에는 서울시내 10개 교회로 흩어져서 단식농성에 들어갈 예정이다. 6천명의 동포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단식을 할지 또 얼마나 할지는 알 수 없다. 일단 서울조선족교회는 4천명이 단식할 것으로 추정하고 80대의 버스를 준비할 예정이다. 사실 중국동포는 단식이 익숙하지 않다. 단식하면 죽는 줄 안다. 그래서 의외로 적은 사람이 단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울조선족교회는 교인들과 함께 의논하면서 단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왜 단식을 하는가? 그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동포들의 깊은 恨과 고통을 전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포들이 이러한 결연한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 한 국민여론은 움직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번에 단식을 하면서 동포들의 애절한 사연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한국에 결혼 왔는데 임신3개월의 몸으로 시어머니한테서 쫓겨나 불법체류하고 있는 여성이 있다. 그 여자는 지금 도저히 중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도 추방당할 처지에 있다. 어떤 할아버지 할머니는 유일한 혈육인 딸이 한국에 시집오면서 친척방문으로 따라왔다가 4년을 넘겨버렸다. 중국엔 집도 친척도 아무도 없다. 오로지 딸에게 의지하며 살뿐인데 어디로 가란 말인가 하고 절규하고 있다. 어떤 여성은 신장투석 중이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극빈자 신장투석을 위한 지원금이 있어 살 수 있지만 중국에 돌아가면 일주일 내로 죽을 수밖에 없다. 너무도 마음씨 착한 한 조선족 아주머니는 그동안 번 돈 4천만원을 두 한국인에게 빌려주고는 이제껏 받지 못했다. 이 아주머니는 추방당하면 돈 받는 것은 영영 포기해야 한다. 그 아주머니는 무일푼으로는 도저히 돌아갈 수 없다고 절규한다. 우리가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이들 동포들의 절규가 한국사람들의 귀에 들릴 수가 없다.
나는 그동안 조선족 동포들에게 중국으로 돌아가서 민족적 주체성을 가지고 잘 사시오 하고 설교해 왔다. 그동안 동포들은 내 말에 상당히 섭섭해했다. 어느 때는 서목사님이 우리편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국정부편이라고 하며 실망했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9월 연변 자치주 50주년 행사에 초청되어 연길시에 가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조선족 동포사회의 미래에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고민했다. 교인들에게 앞으로 내가 어떻게 설교해야 할 것인가? 도저히 중국으로 돌아가 잘 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찾아주는 운동을 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부터 나는 이 문제를 위해 글도 쓰고 사방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돌려줄 것을 역설하고 다녔다. 노무현대통령에게는 그분이 후보시절 경실련 토론회에 오셨을 때 20분간 이 문제를 설명해 드렸다. 고건총리께는 일부러 찾아가서 이 문제를 상세히 설명했다. 강금실 장관, 청와대 수석 등 주요 정부 인사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찾아가서 설명했다. 국회의원도 스무명가량 이 문제를 설명했다. 모든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했다. 머리를 끄덕거리며 내 의견에 일단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는 그만이었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나중에 가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 문제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로구나. 동포들이 행동으로 그들의 절규를 표현하지 않는 한 아무도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중국 조선족사회가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인은 거의 없다. 그래도 나는 이 문제를 가지고 행동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나는 4년이상 된 사람들은 돌아가야 한다고 은근히 설득했다. 그런데 동포들의 반응은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동포들의 중첩되는 간절한 눈빛 ... 그들은 도저히 돌아갈 처지가 아님을 내게 무수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들에게 졌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 운동을 할 때임을 깨닫게 되었다. 11월 15일이 지나면 이들은 전부 잠적한다. 그렇게 되면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문제를 호소할 사람들도 사라진다. 11월 15일 전에 이들이 '이땅이 내땅인데 우리보고 어디로 가란 말이냐'하고 소리지를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동포들에게 국적회복운동을 제안했다. 그리고 동포들에게 \"여러분이 행동하지 않는 한 아무도 여러분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문제제기를 하십시오!\"하고 선동하기 시작했다.
10월 26일에는 설교시간에 영광의 탈출(엑소더스)이라는 영화감상 소감을 말했다. 이 영화를 빌리느라 한시간 동안 구로동을 헤메었는데 결국은 목동까지 가서 비데오를 구하는데 성공했다. 이 영화에서 사이프러스 수용소에 있는 유태인 611명은 주인공 아리 벤 카난의 지도 하에 팔레스타인으로 가기 위해 화물선을 타고 가다가 발각이 되어 배 안에서 농성을 한다. 이들 중 588명이 음식물을 바다로 던지고 배에서 단식을 시작한다. 그런데 13세 이하의 어린이들은 성장을 해야 하므로 단식해서는 안 된다고 의사들이 문제제기를 했다. 아리 벤카난은 13세 이하의 어린이는 어머니와 함께 수용소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지만 어머니들은 듣지 않는다. 죽어도 수용소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어머니들이 답변했다. 결국은 영국이 손을 들고 이 배가 팔레스타인으로 떠나는 것을 허락했다.
지금 조선족동포들의 처지는 이들 유태인들과 같다. 지금까지 동포들은 한국에서 차별과 천대를 받으며 눈물과 한숨 속에서 살아왔다. 이 모든 고통은 한국이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돌려주지 않은 데에서 비롯된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식에게 또다시 눈물과 한숨을 넘겨줄 것입니까? 아니면 결단을 하고 조선족을 위대한 민족으로 탈바꿈시킬 것입니까?'하고 나는 동포들에게 대들었다. 그리고 '당신들이 단식을 한다면 나도 하겠오. 지난번에는 23일간 단식을 했지만 이번에도 승리하기 전에는 절대로 단식을 중단하지 않겠오'라고 말했다. 지금 동포들이 순순히 한국정부 말을 듣는다고 해서 한국정부가 이들에게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되돌려 줄까? 천만의 말씀이다. 유태인들이 영국정부의 말을 순순히 들었더라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결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동포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우리는 이렇게 싸우려고 한다. 4천명이 10개 교회에 들어가면 의사가 진단해서 도저히 단식하면 안되는 사람들은 단식 못하게 할 것이다.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식사를 하며 농성을 한다. 며칠에 한번씩 의사가 검진해서 더 이상 단식하면 안될 사람은 단식을 중단하도록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끝까지 단식과 농성을 계속할 것이다. 교회에는 말할 수없이 죄송스럽다. 그러나 11월 15일 이후에는 이들은 잡혀가기 때문에 농성을 중단할 수도 없다. 교회를 민수기 35장에 나오는 억울한 살인자를 위한 逃避城처럼 생각하고 동포들이 찾아갈 때 교회들은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그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단식을 중단할 요구조건은 무엇인가? 첫째는 정부가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동포들에게 돌려줄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에 헌법소원을 내는 국적회복신청자들은 판결이 나올 때까지(판결은 6개월내로 나오는 것이 원칙이다.) 국내에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원래 소송중일 때는 출국을 유예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재판중인 많은 동포들이 보호 일시해제 조치를 받았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정부가 이들 헌법소소원을 낸 동포들에게 인도적 조처를 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둘째 딱한 사정이 있는 동포들은 다 구제해서 중국으로 추방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금년 3월 31일당시 불법이었던 사람들은 구제해주고 3월 31일 당시 합법인 사람은 구제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으므로 이들도 구제해야 한다. 넷째 친척방문으로 입국해서 3월 31일 이후에 불법이 된 사람은 원래는 취업관리제로 얼마든지 합법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인데 정부가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불법으로 빠졌으므로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 다섯째 국회에 계류중인 국적법 개정에 국회가 늑장을 부리고 있어 국제결혼을 했다가 신랑측의 귀책사유로 이혼된 사람들이 추방당하게 되었다. 국회는 이 국적법개정안을 즉시 통과시켜 이들이 억울하게 추방당하지 않게 해야 한다.
기자들 중에는 우리의 행동이 중국으로 가지 않으려는 편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생각은 다르다. 그렇게만 보면 이 운동을 왜곡된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운동은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찾는 운동이다. 그리고 이 기회에 동포들에게도 분명히 말씀드리려고 한다. 조금 더 체류하기 위한 편법으로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서류와 행정경비를 찾아가기 바란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원치 않는다. 그런 사람은 결코 단식투쟁을 할 수 없다.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찾기를 위해 몸을 내던져 투쟁할 사람만 남아달라.
* 해동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3-11-04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