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음 선생님의 존재의 이유 에 대한 글을 보고 저도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쌓여진 불만이라고 할까?.여하튼간에 그어떤 사물적 논리가 아닌 단순히 조선족들이 중공에 대한 보은과 겸양의 가치관이 과연 어떻게 성립되고, 또 그로 인한 그 어떤 물리적 지배논리로 중공이 조선족들에게 새롭게 인지시키도록 무척이도 역설하는 것을 다시금 파헤치는 좋은 기회라 일삼고 싶기도 하여 미숙한 제 소견이지만 토론에 참여해보고저 합니다.
사실 지금도 대다수의 조선족들은 중공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보다는 그냥 그들이 처한 지리적 위치가 가장 불리하고 어려웠을때 중공이 발빠르게 대처한 입장에 대한 보은과 겸양으로 하여 지금도 어느정도의 불신임이 아닌 기대심리의 기둥체로 존립되여 왔다고 전 생각을 합니다.
중공은 이러한 조선족들의 심리를 잘 이용하여 지금 우리가 보편적으로 다 알고 있는 그무슨 삼관교육을 더불어 지금도 동북공정과 함께 점차적으로 조선족들의 생존에 올가미를 죄여들어오고 있다고 전 보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중국내 다수의 조선족들은 이러한 힘의 지배 논리에 관심도 없을 뿐아니라 미처 깨닫지도 못한채 좋은것이 마냥 좋은것인지 보은과 겸양의 틀에서 헤메고 이중적인 잣대를 과감히 털어못버리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하고 좀 고민도 하고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도 미숙한 생각이라 아직도 원만한 답을 얻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미로속의 터널에 같힌 조선족들의 중공에 대한 환상의 틀을 과감히 깨 버리고 싶을 정도로 도전도 해보고 싶어 사실 제가 자라온 우리집안의 성장과 더불어 빼놓을수 없는 중공에 대한 보은과 겸양의 존재 가치에 대하여 파헤쳐 보려고 합니다.
저의 집안은 사실 중국에 있는 조선족으로써는 중공의 보은을 많이 입은 집안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돈에 팔촌까지도 공산당원이 많은 구성원 가족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도 지금처럼 천방지축이 아니고 코스를 제대로 밟앗더라면 지금쯤 아마도 열혈 공산당원이 되였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남들이 부러워마지 않은 명문대 출신이였고 또한 아버지는 군대에서 입당한 당원이였습니다. 어머니는 물론 사회에 나와 열성적으로 사회에 공헌한 대가로 당원이 되였습니다. 더욱이 아버지 집안 분 할아버지 한분은 연변의 최고 간부로서 일제강점시기 쪽빠리 놈들의 작두에 머리를 베여 거리에 매달아놓아 돌아가신 분도 계십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열사비도 큼직하게 들어서고 지금도 중앙에서 때마다 선물상자도 내려오기도 합니다. 또한 그 덕에 곁가지 자식들이나 친척들도 덕을 보아 명문대도 많이 가고 당의 영도급도 많이 되기도 하였습니다만..
그렇다고 하여 늘 중공의 달디단 보은만 입은것도 아니였습니다. 중공의 그 유명한 문혁때는 자치주에 중추적 영도로 있던 친척분은 말도안되는 인텔리라는 미명하에 도문에서 그무슨 양철통 바껫쯔를 머리에 뒤집어 씌여 앞도 못보고 맨발로 포승줄에 결박당하여 길거리 군중들이 날리는 돌총에 맞아 돌아가신 분도 계시는 영화속의 비극같은 아픔을 지닌 경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이러니속에서도 한 집안의 다른 분들은 그당시 남들은 농촌에 내려가 단련한다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속에서도 속속 명문대를 추천받아 가는 희귀한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도 있었답니다.
그리고도 민족적 가치에서는 동족상잔의 부끄러운 일이지만 보은의 보답에 모자란듯 중공의 항미원조 기치의 붉은 오성기를 휘날리며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시신이 뼈가 어디에 묻혀있을지 고장 이름도 모르는 북한의 어느 한 야산인지 산자락에 마다바이 두분이나 묻혀 있는 열사비 집안이기도 합니다. 또한 일제때 만주로 건너가 그무슨 지하공작을 하여 안도 경찰서에서 피살된 시체를 쇠술기에 거적대기 한장을 씌워 찾아온 항일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여 있는 투사집안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갈래도 많고 사연도 많아 우리집안 분들은 무슨때마다 사돈에 팔촌까지 모여않으면 끝도없는 이야기 설전에 날밤을 새우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만큼 중공에 보은을 입어 덕을 보기도 하여 겸양을 갗추어 보답한다는 것이 오히려 화를 자초해 피해를 많이본 집안 역사이니 할말도 많고 하겠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어느날 부터지 모두 꿀먹은 벙어리를 자처하는 풍경도 지켜보며 자라온 나도 헷갈리는 화를 자초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렇게 집안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우리집안이 이러할진대 사실 대다수의 조선족들의 중공에 대한 보은과 겸양의 논리에 대해 보이지않는 잣대의 기준을 어찌 유지하고 생각하고 있을가 하는 심리적인 호기심도 듭니다. 또한 실지적으로 중국내에서 살지 않는 외부 사람들이 과연 조선족들을 향해 바라보는 눈길을 어떻게 하면 입장의 차이를 제대로 전달할수 있게 자리매김을 할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고싶어서 이런 사유에 비교 하게 된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지금의 조선족들은 무작정 살길이 없어 만주로 건너가 빌붙어 산것이 아니라고 전 봅니다. 당시에 간도는 우리 땅이란 막연한 역사 의식도 있었기에 그리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역사의식을 계승하거나 우리것으로 만들지 못했고 한족의 논리로만 지식을 채웠습니다.
또한 일제가 강점한 조선의 일시적 이런저런 귀책에 따라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기도 했지만 그나마 황무지 땅을 스스로 개척하고 일구어 우리들만의 보금자리로 만들어준 조상들의 억척같은 삶의 가치관을 지금 우리 후대들이 그대로 본받고 잇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정신도 남아있지 않으니 중공에 대한 보은과 겸양의 그늘속에서 피사체를 구별 못하고 질질 끌려가다가 이젠 정말 막다른 골목까지 밀려오게 된 심정과 집시민족처럼 유랑이라는 말을 스스로 자처 함으로서 그렇게 중국정권과 다른 민족에 비추어 지고 있는데 대하여 정말 스스로도 화가나고 그것을 반전으로 뒤집어 엎을수가 없다는 무지함에 자존심이 상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런분들도 꽤 될것으로 봅니다만 앞서가는 5%도 조차도 양양한 기치는 잠시 유보하면서 깃대를 슬그머니 흔들려고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보니 더욱 서글픈 조선족 현실앞에 한탄이 절로 나가는 것은 어찌할수가 없는것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지금 부터라도 우리 동포들 스스로 각성하고 우리를 옭아매는 논리를 백에 하나 옳은 것이 있을수 있겠습니다만 빨리 바꿔나가야 할 것입니다.